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두환/부정적 평가 (문단 편집) === 부정부패 === 재임기간 내내 형제와 처가 사람들이 연루된 각종 권력형, 친인척 비리 [[장영자·이철희 금융사기 사건]], 명성그룹 사건, 정래혁 사건, 영동개발진흥 사건, 동생 [[전경환]]의 새마을본부 비리가 일어났다. 전경환은 이 일로 기어코 구속되었다. 특히 사위 [[윤상현(정치인)|윤상현]][* 전두환의 딸인 전효선 씨와 85년 결혼했으니 전두환 친척권에 포함되는 셈이었다. 이후 유학을 떠나며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생활을 했으나, 2005년 부로 전효선과는 이혼한 상태.]이 [[석사장교]]로 [[소위]] 임관 후 고작 하루 내에 제대했다는 사실은 군비리 분야에 두고두고 화자되는 이야기.[* 1988년 5월 14일 임관 후 당일 제대.][* 사실 [[석사장교]]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듯이 소위 [[금수저]]를 위해 고작 6개월 복무시키는 군비리의 수단에 지나지 않은 장치에 불과했다. 전두환 장남 [[전재국]]도 이런 수단으로 6개월 단기복무를 했지만, 당일치기 제대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.] 그뿐만 아니라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거액을 챙긴 사촌형 전순환과 노량진 수산시장 영업권 불법인수와 관련된 친형 전기환, 공금을 횡령한 처남 이창석 등이 전두환의 재임기간 중 비리를 저질렀다. [[전두환 시리즈]]나 [[29만원]] 같은 풍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두환 본인도 매우 부패하기로 악명 높으며, 기업들에게 정치자금을 내도록 강요하여 이승만, 박정희 정권의 뒤를 이어 [[정경유착]]의 훌륭한 예시를 보여주었다. 전두환 본인이 대통령으로 집권할 동안 조성한 비자금은 [[1996년]]에 확인된 바로만 무려 '''9,500억 원'''[* 2023년 4월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'''1조 9,750억 원'''에 이른다.]에 이르며, 1조원대라는 주장도 있다. 이 인습이 차기 정부에까지 줄줄이 [[대물림]]되어 정치권과 [[재벌]]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대로 깎아먹었다. 이 모두와 연관지어 전두환은 IMF의 진정한 원흉이다. 비슷한 시기에 집권했던 [[대만]]의 [[장징궈]]와 [[싱가포르]]의 [[리콴유]]가 얼마나 청렴했는지를 비교해 보자. [[오대양 집단 자살사건]]와 [[세월호 참사]]에 연루된 '''[[유병언]]''' 역시 전두환 집권기에 산업화에 기여했다며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을 정도로 답이 없는 정권이었다. [[http://premium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2014/07/31/2014073102598.html|#]] 유병언은 전두환과 전경환과의 친분으로 유람선 사업, 스쿠알렌 등의 제약 사업, 유기농 식품, 자동차 부품, 페인트, 컴퓨터 모니터 등의 사업에 뛰어들어 크게 재미를 보았다. 그 뒤에도 1980년, 1981년, 1982년에 각각 세 차례나 훈장을 추가로 받았다. [[http://www.asiatoday.co.kr/view.php?key=20140429010017452|#]] 이 때문에 흔히 전두환 정부 후기를 [[3저호황]]의 경제 전성기로 보지만, 전두환 정부의 부패가 호황을 조기종료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